‘너 T야~?’ 하는 유행어 들어보셨나요? MBTI에서 유래했는데요. 예를 들어, 연인과 싸웠다며 불평하는 친구가 있어요. 이때 위로보다는 ‘그런데 이러한~ 점은 네가 잘못한 거 같아’하는 식으로 직언을 남기는 T 유형에게,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를 담아 쓰여요. F 유형인 저는 종종 T 같다는 말을 들으면 ‘현실적이고 절제할 줄 아는. 그런 이미지를 준 건가?’ 하는 생각에 속으로 매우 기뻐하는데 말이에요. 오늘은 제 머릿속 ‘T’의 이미지📊와 완벽히 부합했던, 원주의 시골언니를 만나고 왔어요.

📢 이 콘텐츠는 2023 시골언니프로젝트와의 협업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나도 몇 년 안 남았구나

반도체 분야에서 일하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몸담기도 했어요. 어느 날, 구조조정으로 함께 일하던 선배들이 짐을 싸는 걸 목격했어요. ‘나도 몇 년 안 남았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헤드헌터 친구에게 상담을 요청했죠. 그때 돌아온 답은 “소민아. 미안하지만, 냉정하게 헤드헌터 시장에서 너는 큰 경쟁력은 없어.” 경쟁의 사회를 실감한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 몸담아야 하는 사회를 찾기 시작했어요.

퇴사를 하고 나니 창업 정책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우연한 기회로 도시재생 지역의 청년 창업자들을 만났었는데, 좋은 말이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웃음) 관 주도로 진행되는 문제부터, 성공한 창업자의 남모를 고충까지. 다양한 지역의 창업가들을 만나면서 대도시가 아니라 지역으로 가는 방향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다만, 제품보다는 서비스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내는 창업의 방향으로 가기로 했어요. 디자인이나 콘텐츠, 서비스 분야에서 관점이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귀촌을 하고 밀 농사를 처음 시작했어요. 자연스럽게 임업과 어업 정책도 살펴보게 되었고요.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이, 우리나라 국토 면적의 63.3%가 임야라는 거예요. 농촌이든, 어촌이든 숲이 없는 지역이 없잖아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싶었죠. 우선, 산을 갖고 있는 분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대화하다 보니, 사유림 산주마다 독특한 스토리가 있더라고요. 그러고 숲을 경험하니 숲이 새롭게 보였어요. 그때 생각했죠. “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스토리로, 자신의 산을 자랑하게 해주자.” 그게 제 귀촌 모델인 산림관광이었어요.

우리가 김태리는 아니잖아요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은 보통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상상해요. 하지만, 우리가 김태리는 아니잖아요.(웃음) 현실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하죠. 현실을 가장 잘, 쉽게 볼 수 있는 방법은 데이터라고 생각해요. 귀촌자가 가장 쉽게 놓치는 부분이기도 하죠. 누군가가 주입해 주고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파악해서 자기만의 논리와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꼭 필요해요.

원주라는 지역을 택할 때도 데이터는 저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어요. 귀촌을 결심하면서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등의 공공기관에서 발간되는 보고서들을 적극적으로 읽어봤어요. 원주는 소비 지수도, 회복탄력성도 꽤 높았죠. 거점의료시설이 있다는 점도 홀로 귀촌해 사는 제게 아주 중요하게 다가왔어요. 또, 분만을 하는 산부인과가 많아요. 강원도의 다른 도시들은 산부인과가 없어 아이를 낳기 위해서 강릉 아산병원에 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는 이걸, 도시 내에서 먹고사는 것이 해결되는 지역이라고 해석했어요.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적고, 어떤 일을 시작해도 소비해 줄 사람들이 있겠다는 판단이 섰죠.

원주의 시골언니프로젝트에 이런 내용을 녹이고자 했어요. “농사짓지 않아도 괜찮아. 대신, 자신만의 귀촌살이 모델을 만들어 보자.”하고요. 함께 공부도 하고, 촌에서 살 수 있는 체력도 키우고, 대화도 나눌 거예요. 농촌 경제학 전공자가 농업의 역사를 알려주고 인구 전공자가 농촌 인구 변화에 관해 설명하죠. 시골언니프로젝트로 원주에 정착하는 사람이 생겨나면 좋겠죠. 하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돼요. 다른 지역에 정착하더라도, 아니면 시간이 지나 귀촌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원주의 그 언니한테 연락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꿈과 희망이 가득 찬 이야기는 아닐지 몰라도, 정말 도움이 되고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와 도움을 줄 자신이 있거든요.

우리가 김태리는 아니잖아요. 정곡을 찌르는 듯한 소민님의 말에 괜히 숙연해져요…🤭 맞아요, 도시를 떠나 낯선 지역에 사는 건 매우 현실적인 문제죠. 하지만 여전히 시골에서의 삶 하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 같이 여유 있고 무해한 분위기가 떠올라요. 탐방러님의 환상 속 시골은 어떤 드라마나 영화의 장면과 비슷하나요? ‘포도밭 그 사나이’ 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있었는데 아실지 모르겠어요. ‘여름의 시골’하면 꼭 이 드라마가 떠오르곤 한답니다. (주인공 ‘지현’이 1년간 농사를 지으면 1만 평의 포도밭🍇을 물려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농촌으로 내려가 시골 생활을 하는 내용이에요. 지현도 귀촌을 했었군요!)